(출처: 페어폰) 통신사 약정기간이 끝나도 기기 교환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눈에 띄는 혁신은 없고 디자인은 진부하지만 가격은 너무 비싸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통신사 약정 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기기를 마련하는 게 당연했다. 번호이동을 하면 싸게 살 수 있었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다. 자급제 기기를 사서 오래 쓰는 사용자가 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제조사들도 더욱 장기간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추세다. 보장 기간이 짧았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은 최대 4년, 구글 픽셀6 시리즈는 5년까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보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걸로 충분할까? 7년째 업데이트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가 있는데.
출시 7년차 페어폰2, ‘안드로이드10’ 입고 지속가능경영을 목표로 하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있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기업 페어폰이다. 국내에서는 착한 스마트폰으로 유명하다. 노동력 착취가 없는 비쟁의 지역 광물만 사용해 수리가 쉬운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윤리적 기업이다. 이 회사에서 2015년 출시한 기기가 ‘페어폰2’, 최근 안드로이드10 업데이트를 받았다.출시한 지 7년이 지난 스마트폰이 새로운 버전보다 업데이트를 받은 것은 안드로이드 기준 처음이다. 비록 2세대 뒤처진 안드로이드 10이지만 이처럼 오랫동안 업데이트를 제공한 안드로이드 제조사는 없다. 같은 해 출시된 삼성 갤럭시S6도 안드로이드 7.0이 마지막이다. 그 시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통상 2~3회까지 버전보다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초 페어폰2는 안드로이드 5.0 롤리팝으로 시작됐다. 원래대로라면 안드로이드 8.0 오레오 업데이트 차례였지만 이를 건너뛰고 나서 안드로이드 10으로 직행했다. 페어폰2에는 퀄컴 스냅드래곤 801이 탑재됐다. 갤럭시S5에 들어간 칩셋 같은 모델이다. 당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성능 부족을 이유로 판상 업데이트를 제한했지만 지금 페어폰2를 보면 꼭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페어폰2는 안드로이드10이 마지막이다. 페어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버랏 프라카시(Bharath Prakash)는 “하드웨어 제한과 리눅스 커널 버전으로 인해 기기를 안드로이드 11~12로 업데이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페어폰2 이야기로 2019년 출시한 페어폰3의 경우 곧 안드로이드11 업데이트를 받는다. 현재 회사 내부에서 베타 테스트 중이다.
(출처: 페어폰) 시대를 선점한 페어폰 최근 제조사들이 판올림 업데이트 보장 기간을 늘리고 있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진 것을 반영한 듯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교체 평균 주기는 3년 7월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3개월 증가한 수치다. 하드웨어 지원이 충실해야 기기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제조사들의 수리권 보장은 걸음마 단계다.
이와 달리 페어폰은 이전부터 수리가 용이한 스마트폰이었다. 페어폰2에서 부품 교체가 용이하도록 내부 구조를 단순화하고 모듈화한 부품을 사용해 왔다. 고장나면 필요한 부품만 구입해서 교환하면 된다. 제공하는 부품은 예비 케이블, 배터리, 디스플레이, 상·하 모듈, 전·후면 카메라 등이다. 단종된 제품도 문제없다. 홈페이지를 보면 출시 7년차 페어폰2 부품도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수리가 쉬운가? IT기기 분해 전문 사이트 아이픽스이(iFixit)는 제품별로 수리 용이성 점수를 매기는데 페어폰은 2부터 4까지 총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았다. 배터리, 스크린 등 주요 부품 설계에 우선순위를 둬 분해와 교체가 용이한 구조라는 설명이다. 전문 분해 도구 없이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전체 모듈 교체가 용이하다는 평가다.
출처 : 페어폰) 우리는 돈을 버리고 있는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할수록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배출하는 폐가전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페어폰에 따르면 연간 배출되는 전 세계 폐가 전량은 5000만t에 달한다. 같은 양의 금광석보다 폐가전에 100배 많은 금이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2020년 유엔(UN) ‘E-waste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폐가전 재활용 비율은 17.4%에 불과하다. 한국은 매년 자원과 돈을 버리는 셈이다.
이에 따라 페어폰은 스마트폰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연간 1만7000개 이상의 스마트폰을 재활용하고 있다. 수거한 스마트폰의 40%는 데이터를 완전 삭제하고 수리한 뒤 재사용된다. 나머지 60%는 유럽의 재활용 시설로 보내 자원을 회수한다. 최근 들어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페어폰은 이보다 먼저 방법을 찾았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윤종환 [email protected] [fv0012]
최근 IT 분야에서 ‘자가 수리권(Right to Repair)’이 주목받고 있다. 제조사 공인서비스센터를 방문하는 대신 소비자 스스로 기기를 수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한국은 서비스센터 접근성이 좋은 편이지만 국토 면적이 넓은 미국에서는 도시에 거주하지 않는 이상 서비스센터 방문이 어려워 자가 수리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가 수리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전자제품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지 못해 제품이 심각하게 망가져서 새로 구입하는 대신 소비자가 부품과 도구를 구입해 스스로 고치고… tech-plus.co.kr